만감

 

새벽에 광주에서 출발한 열차는 용산역에서 분리되어 갈라졌다. 어수룩한 어둠이 내릴 쯤에야 경원선의 종점 신탄리에 내렸다. 낡은 철재 간판에 쓰여진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문구는 가히 전방에 왔다는 느낌을 더했다. 용산을 거쳐 신탄리까지 오는 동안 생소한 역들에서 많은 동기들이 내리고 결국 종착역으로 향하는 객실에는 나와 송민종 소위만 남아 있었다. 소박한 신탄리역 플랫폼에는 콘크리트를 뚫고 나온 풀들이 건들거리며 있었다. 여섯 량 짧은 객차에서 몇몇이 주섬주섬 더플백을 들고 내리고는 이내 작은 대합실 너머에서 트럭을 타고 역을 빠져나갔다. 트럭들이 광장을 빠져나가는 순간 동기들은 호루 밖으로 머리와 손을 내밀어  잘 가라고 인사했다.

 

10월 백골 OP에서 바라본 민들레 평원과 만도 평원은 아름다웠다. 실개천이 흐르는 넓은 분지형의 평지는 드문드문 나무가 있는 초지였고 색이 강렬했다. 앞에서 브리핑하는 OP 관측 장교는 주요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연신 전방을 설명했지만, 귀에 들리지 않았다.  철원과 원산 구조곡이 만든 멋진 풍광은 한동안 내 눈을 놓아주지 않았고, 시각 이외에는 다른 감각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관측소를 나오니 아늑함은 사라지고 겨울 냄새가 나는 바람과 멀리 보이는 오성산이 왠지 모를 두려움을 주었다. 떨어지는 롤러코스터나 어두운 뒷골목에서 느껴지는 소름 같기도 하고, 어릴 적 반복해서 꾸었던 끝없이 떨어지는 꿈 같기도 하고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었다. 신선함과 건조함, 그리움과 새로움, 슬픔과 아름다움, 편안함과 긴장감, 고요함과 굉음이 동시에 밀려왔다. 10년이 더 지난 최근 나는 이 느낌을 만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송민종 소위와 나는 전포대장(Battery Executive Officer)과 교육장교(FA Battalion Training Officer) 두 보직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전포대장은 독립 포대에서 근무하는 활동적인 병력 지휘자였고, 교육장교는 대대의 지휘부에 근무하는 사무직 참모 직위였다. 우리는 둘 다 전포 대장이 되기를 원했다. 결국 내가 포대로 갔지만, 이 신경전은 내내 미안한 감정으로 민종을 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교육장교가 힘든 탓일 것이다. 둘 다 전포대장 자리를 원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그럴 수 없었다. 결국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일을 한다. 나는 작가가 되었고 민종은 세무 공무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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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위(Xuan Huy Nguyen)는 독일 국적 베트남 작가이다. 그는 젊은 시절 독일로 망명했다. 베트남에서는 그가 그리는 그림을 전시할 수가 없었다. 반체제적이라는 이유로 그는 작품 활동 중단을 강요당했고 20대 초반 모국을 떠나 망명길에 올랐다. 위는 어릴 적 화재로 인해 한쪽 귀와 목 언저리에 큰 화상 흉터가 있었고 그때의 트라우마인지는 몰라도 신체와 고기(육류)가 섞여 있는 사실적이고 신화적인 그림을 그린다. 베를린에서 다시 만난 그는 여전히 밝았고 그의 딸은 그를 꼭 빼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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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대동강 철교를 촬영한 AP 통신의 사진 기자 맥스 데스포(Max Desfor)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1950년 12월 중공군을 피해 공습으로 끊어진 다리 위를 아슬하게 넘어 남하하는 피난민들의 행렬을 담은 그의 사진은 우리에게 전쟁의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 주는 기록 중 하나이다. 전쟁의 후반은 소모적 고지전을 지속하며 고착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병력의 희생을 강요하고 능선과 봉우리를 빼앗고 빼앗기며 정전 협정에 도달하는 동안 전쟁 세대들이 느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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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타(Christa Wolf)는 ‘나누어진 하늘’을 쓴 동독 작가와 이름이 같은 동독의 기자 출신 여성이다. 1989년 그는 신입 기자로 동독의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통일 이후 더이상 기자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숙련되고 체제 적응이 빠른 몇몇의 기자들만이 동유럽 특파원 등으로 업계에 남았다. 그는 크로이츠 베르크 구청에 개설된 영어 강좌를 나와 같이 듣는 동료였다. 차분하고 말수가 적은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러시아어를 잘 구사하였다. 통일 이후 독일은 러시아어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떨어졌으며, 학교에서도 러시아어 수업들이 폐강되었다고 한다. 크리스타는 30년이 지난 이제서야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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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참 믿을 것이 못 된다. 내가 본 DMZ의 풍경이란 아름답고 고요하며 슬프고 꿈틀거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실체는 이미 없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남았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그 설명하기 힘든 느낌을 기억하려 애쓸 뿐이다. 전 세계에 DMZ가 있었던 곳은 독일, 베트남과 한반도 세 곳이다. 이 중 독일은 자유주의 체제로, 베트남은 공산주의 체제로 통일되었다. 많은 동독의 사회 지도층은 직업을 잃었고, 많은 남베트남의 사회 지도층은 목숨을 잃었다. 많은 동독 지역 주민들은 통일 전 동독을 그리워했으며, 많은 남베트남 지역의 주민들이 바다로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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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들어서면 1층 천장에서 대동강 철교와 한강 철교가 서로 만나지 못하며 수평으로 움직이거나 회전하는 것을 본다. 두 다리는 마주칠 듯 엇갈리며 70여 년 분단의 세월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계단을 내려오면 전면에는 건물이 처음 지어졌을 때 있었던 계단의 흔적이 벽과 바닥에 있고 바로 옆에 모래 자루들이 쌓여 있어서 전시장 전체가 마치 벙커처럼 보이게 한다. 실제 크기의 벙커와 두 개의 원형 참호가 자리하고, 계단 밑 공간에는 열리지 않는 문이 있다. 이 열리지 않는 문은 조그만 창과 문틈으로 거리감을 느낄 수 없는 빛의 공간을 볼 수 있다. 문 너머에 밝고, 크기를 알 수 없는 공간이 있음을 느끼게 하지만  문은 닫힌 채 열리지 않는다.

 

동선을 따라 벙커로 진입하면 관측 창을 통해 영상을 바라볼 수 있다. 영상은 로드무비같이 지속적으로 움직이며 기억의 파편적 모습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도시와 바다, 클럽과 화재, 듀공의 모습들이 스치듯이 지나간다. 영상은 도로를 주행하는 장면과 미로처럼 뻗은 지하의 좁은 통로 장면들이 영상의 흐름을 유지한다. 영상에는 현장에서 녹음된 소음과 함께 색소폰으로 부는 ‘On the Sunny Side of the Street’이 흘러나온다.

 

벙커의 내부로 좀 더 들어가면 작은 DMZ를 볼 수 있다. 한 평이 채 안 되는 공간에 자연광과 같은 색온도의 조명으로 만들어진 작은 정원이다. 이 정원은 두 개의 관측창을 통해 식물과 상대를 교차된 상태로 바라볼 수 있다. 이 순간 관람자는 관찰자가 되고 정원의 식물들이 주인공이 된다. 벙커의 세 번째 관측 창을 마주하고 서면 전시장의 다른 쪽이 보인다. 이때 관람자는 낙엽 위를 걷는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벙커의 출구로 나가면 조명의 방이 있는데 여기에는 두 개의 조명이 매달려 있다. 이 조명들은 이데올로기로 해석될 수도 있고 남북한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이 조명등은 서로 다른 관점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푸른 등과 붉은 등은 각각의 색깔을 드러내다가 둘 다 붉게 변하거나 둘 다 푸르게 변하면서 방을 물들인다. 붉은 등과 푸른 등이 점등되었을 때 공간 밖에서 바라보면 보랏빛이 공간의 내부를 채우지만, 실제로는 공간 내부에 푸른 등과 붉은 등이 존재할 뿐이다. 푸른색과 붉은색이 만나면 보라색이 된다. 푸른빛과 붉은빛이 만나면 보랏빛이 된다. 푸른빛과 붉은빛이 만나면 푸른빛이 된다. 푸른빛과 붉은빛이 만나면 붉은빛이 된다.

 

다시 전시장 중앙으로 오면 두 개의 원형 참호가 있는데, 관객은 참호를 회전시켜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본래 참호는 전면이 적의 방향으로 향해 있고 후면에 아군 방향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다. 이 전면 벽과 후면 출입구의 위치를 회전시키면 두 개의 참호가 하나의 둘레를 형성하는 통일의 상황이 될 수도 있고, 서로 대치하는 분단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어느 한쪽이라도 대치 상황을 유지하면 그 소통은 연결되지 않는다. 두 개의 참호 사이에는 ‘‘솔직한 다리’가 놓여 있다.

 

사람들은 각자가 바라보는 대로 상황을 인지한다. 사실이란 그렇게 각각의 형태가 된다. 이것은 마치 지문과 같아서 우리 사회의 상식이란 그 구성원의 수만큼 존재한다.  때로는 너무 멀어서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때로는 너무 가까워서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때로는 나여서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때로는 너여서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만감이 교차한다’라는 상황을 아주 가끔 마주한다. 나의 경우에는 DMZ를 본 날 그 감정을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이 느낌을 여러 사람에게 설명해 보았지만, 감정이란 것이 사람마다 순간마다 상황마다 너무 달라서 그것을 공유하기란 쉽지 않았다. 복합적인 감정들이 쏟아졌던 그 순간이 오늘따라 더 그립다. 이 전시는 작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분단과 사회를 비무장지대에서 느낀 다중 감정을 토대로 풀어 쓴 이야기다. 전시장의 특성을 최대한 고려해서 설치된 다섯 개의 신작이 가까이 있어서 깊이 돌이켜보지 못한, 너무나도 익숙한 현실에 대해 작지만 진지한 질문을 한다.

The train departing from Gwangju at dawn separated in two at Yongsan Station. When the dim twilight approached, I got off at Sintanri, the end of the Gyeongwon Line. “The iron horse wants to run.” The sentence written on an old iron signboard added to the feeling that now I was on the frontline. During the trip to Sintanri via Yongsan, many colleagues got off at unfamiliar stations, and eventually only the second lieutenant, Song Min-jong, and I were left on the train heading for the final station. The grass that broke through the concrete was swaying at the rustic Sintanri Station platform. From the short 6-car train, they got off one by one with a duffel bag, and soon left the station, via the small waiting room to board trucks. As the trucks pulled out of the square, my colleagues greeted each other with their heads and hands peeking out of the tarpaulin.

 

The views of the Dandelion and Mando plains from the Baekgol O.P. in October were beautiful. The broad, basin-shaped plain with flowing streams was grassland with sparse trees and intense colors. The O.P. officer briefing droned on, explaining the front line using the major geographic features, but I couldn’t focus on the words. The wonderful scenery, produced by the rift valleys of Cheorwon and Wonsan, held my attention for a while and I could only focus on what lay before me. Coming out of the O.P., the coziness disappeared and the distinct scent of winter wind and Oseong Mountain in the distance frightened me somehow. It was like the unnerving feeling in a falling roller coaster or a dark back alley, or like the dream of endless falling that I had repeatedly experienced in my childhood—it was a strange feeling that I could not define clearly. Freshness and aridity, longing and newness, sorrow and beauty, comfort and tension, tranquility and roaring rage assaulted me all at once. Now, more than a decade later, I have come to think about the mixed emotions I felt at that time.

 

The second lieutenant Song Min-jong and I fought over two positions, the Battery Executive Officer and the FA Battalion Training Officer. The Battery Executive Officer was an active force commander working in an independent battery, and the FA Battalion Training Officer was a clerical staff position working under the command of the battalion. Both of us wanted the Battery Executive Officer position. Eventually I went to battery, but after our competitive wrangling, I always felt sorry for Min-jong. That’s probably because the training officer job is more demanding. We both wanted to be a Battery Executive Officer, but we couldn’t. After all our past experiences, we ended up with completely different jobs. I became an artist and Min-jong became a tax offi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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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friend Xuan Huy Nguyen is a Vietnamese artist of German nationality. He fled to Germany to seek asylum as a child. In Vietnam, he could not display his paintings. He was forced to stop working because he was a political dissident, and left his homeland in his early twenties to go into exile. Due to an accident he suffered in childhood, he had a big burn on one ear and neck, and perhaps because of the trauma from that incident, he draws realistic and mythological paintings with the human body and meat. When I met him again in Berlin, he was still lively and his daughter was the spitting image of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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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 Desfor, the Associated Press photographer, who had photographed the broken Daedong-gang River railway bridge, died recently. In December 1950, his photographs of the procession of refugees as they headed south over the bridge, which had been destroyed by air strikes, were one of the records showing us the stark reality of war. The second half of the war was in a stalemate, with continuous, exhausting battles throughout the highlands. What did the war generations feel as they were forced to sacrifice troops and take and lose the mountain ridges and peaks to reach the armi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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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a Wolf is a former journalist from East Germany who has the same name as the East German writer who wrote The Divided Heaven. In 1989 she was a novice reporter working for an East German newspaper, but after the reunification she could no longer work as a journalist. Only a handful of journalists who were skilled and quick to adapt stayed in the industry as correspondents in Eastern Europe and beyond. She was my fellow student in an English class at the Kreuzberg borough office. She was calm, reticent and of an introverted character. She spoke Russian, but after the reunification, the demand for Russian fell sharply in Germany, and Russian classes were closed at schools. After more than 30 years, she is now studying 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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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is indeed unreliable. The scenery of the DMZ that I saw was beautiful, calm, sad and undulating. But when I muse over it now, the reality is no more. All that’s left is what you want to remember. Yet I’m just trying to remember that inexplicable feeling. There were three DMZs in the world: Germany, Vietnam and the Korean Peninsula. Germany was unified into a capitalist system, and Vietnam was unified into a communist system. Many East German leaders lost their jobs, and many South Vietnamese leaders lost their lives. Many people of the East German region miss East Germany before unification, and many in South Vietnam fled to the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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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ing the exhibition hall, you see the railway bridges of the Daedonggang River and the Hangang River on the ceiling of the first floor. They don’t meet each other, but, as they move and rotate horizontally, the two bridges seem to join together. Finally, they cross each other to symbolize the 70 odd years of division.

 

As you descend the stairs, there are traces of the staircases on the walls and floor in front of the building, and sandbags are stacked to the side, making the entire exhibition hall look like a bunker. There is a full-scale bunker and two circular-shaped trenches, and, in the space below the stairs, there is a door that does not open. Through the small window and the chink in this closed door, you can see a pool of light but you cannot estimate its distance from you. You may feel that beyond the door there is a bright space, the size of which you cannot figure out, but the door remains closed.

 

Once in the bunker, you can watch a video through an observation window. The video is constantly moving like a road movie, and the scenes reminiscent of the fragments of memory pass by rapidly. The city and the sea, the club and the fire, and the dugong pass by. The video features scenes of driving on the road and narrow underground passageways running like a maze. ‘On the Sunny Side of the Street’, played on saxophone, accompanies the live sounds.

 

Entering the bunker, you will see a small DMZ. It is a small garden with lighting the same color temperature as natural light in a space less than 3.3 square meters. Through two observation windows, you can see plants and the other side intersecting. At this moment, the viewer becomes the observer and the plants in the garden become the main characters. In front of the third observation window of the bunker, you can see the other side of the exhibition hall. At this point, the viewer can hear the sound of footsteps walking on fallen leaves.

 

Going out of the exit of the bunker there is a lit room, with two lights hanging down. These lights can be interpreted as ideologies or as symbols of South and North Korea. These lights may also be perceived as two different points of view. The blue and red lights change colors and color the room as both turn red or both turn blue. When the red and blue lights are lit, you can see from outside of the space that purple light fills the interior of the room. But inside the space, there are actually only blue and red lights. When the blue meets the red, purple comes out. When the blue light meets the red light, a purple light comes out. When blue light meets red light, blue light comes out. When blue light meets red light, red light comes out.[1]

 

Back in the center of the exhibition hall, there are two circular trenches, which can be rotated by the audience. Normally, a trench faces the enemy in the front, with a path leading to the friendly forces in the back. Rotating the positions of the front wall and the rear door may result in a situation of unification where two trenches form a single perimeter, or a situation of division in which they are opposed to each other. If either side maintains this confrontation, communication is not possible. There is a straightforward bridge between the two trenches.

 

People perceive a situation as they see it. The facts are so different from one another, like fingerprints. The amount of common sense in our society is equivalent to its members. There are things you cannot see because they are too far away. There are things you cannot see because they are too close. And there are things I cannot see because of myself. And sometimes there are things you cannot see because of yourself. Once in a while, we face a situation in which we have mixed emotions. In my case, I first had that feeling the day I saw the DMZ. I have tried to explain this feeling to many people, but emotions are so different from person to person, from moment to moment, and from situation to situation, that it is not easy to share it. Today, I miss the moment when I felt that rush of complex emotions all the more. This exhibition is a narrative of division and society viewed from my perspective, based on the multiple emotions I felt in the DMZ. The five new works, which are installed with the utmost consideration for the characteristics of the exhibition space, ask a small but serious question about the reality that has been so close that we have not been able to look at it de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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