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가상을 직조하는 '손재주꾼'

 

 

박기진은 지난 개인전에서, 원래 하나로 연결되었던 중앙아프리카의 두 호수를 물 속 통로로 연결하여 헤어져 지내던 호수의 물고기들을 만나게 하고 수면 아래에만 머무는 물고기들이 수면 위 세계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물고기 전용 전망대를 만드는 일련의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프로젝트의 상당부분은 작가의 아이디어를 드로잉으로 제시하는 단계에서 그쳤지만, 물고기 전용 전망대의 경우 기성의 부표 설계도에 입각하여 정밀하게 제작, 전시되었다. 이 구조물은 실제 호수에 설치되지 않았지만 (언젠가) 설치, 작동될 수도 있다. 현실과 가상을 실제 존재의 여부로 구분한다면, 박기진의 작품은 현실일까 가상일까? 작가가 역사적,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상상력을 발전시켜 일부는 실제로 구현하고 일부는 구현하지 않았기에 그것은 현실이기도 하고 가상이기도 할 것이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생각보다 뚜렷하지 않다. 실제 존재의 여부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경우 상당부분 믿음에 의존해야하는 것이 사실이고, 오늘날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여지는 많은 과학적 사실들도 예전에는 단지 하나의 상상이나 가정에 그쳤던 것 역시 사실이다. 예술과 과학은 현실로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상상하고 가정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상상을 현실화함에 있어서, 과학이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효용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예술은 작가의 주관적인 아이디어에 의존해 상상이 현실로 구현되는 과정과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에 방점이 찍힌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일차적으로 박기진의 작업이 흥미로운 것은 상상력을 현실화함에 있어 예술과 과학 양 측면에서 접근하여 그 층위를 혼돈케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최근 빈번히 등장하는 과학을 흉내 낸  '유사과학(pseudo-science)' 류의 예술작업들과 일면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들 대부분은 안타깝게도 과학의 껍데기에 집착하거나 기술 그 자체에 함몰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박기진의 작업이 일견 유사과학 류의 예술로 보이는 이유인 동시에 그러한 범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단초는 그가 매체를 다루고 만드는 방식에 있다. 앞서 언급했던 부표형 전망대의 경우만 해도 커다란 쇳덩이가 물에 뜨도록 설계하는 일에서부터 설계대로 실제 구조물을 만드는 일까지 전과정이 작가의 손을 거쳤다. 생소한 분야일 경우 전문적인 기술은 자문을 받을지언정 그것들을 재전유하여 스스로 원하는 그림에 도달하는 것은 온전히 작가의 몫이다. 이전 작업에서는 대형 불도우저와 소형 미니카의 엔진을 구해 직접 투명 플라스틱으로 캐스팅하거나, 버려진 철제구조물에 바퀴와 엔진을 달아 새로운 탈 것을 만들기도 했고, 최근에는 강화유리와 LED를 이용해 바닥에 삽입하는 인터랙티브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원하는 재료를 선택해 기술적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그의 제작 방식은 단순한 조각가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그는 새로운 재료와 매체를 다루는 데 주저함이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에서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재료를 선택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크기와 무게에 관계없이 공장에서 제작한 것처럼 매끈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솜씨는 그야말로 원시시대 ‘손재주꾼(bricoleur)’의 그것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만들기 방식을 알고 나면 그의 작업이 예의 유사과학 류의 예술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실상 박기진의 작업에서 상상력을 현실화하는 예술적 측면이 비단 노동을 전제로 한 공예적 제작방식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결정적인 역할은 모든 만들기의 토대에 상상적 내러티브가 우선한다는 사실에 있다. 상상력의 출발점은 여행을 통한 직접 경험과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의 교차로부서 비롯된다. 어린 시절부터 많은 책을 읽어 온 작가는 흔히 사람들이 가지 않는 전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작품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킨다. 다윈이 진화론을 발견한 동태평양의 군도 갈라파고스,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로 알려진 필리핀 근해의 마리아나, 인간과 자연이 이상적으로 공생하는 뉴질랜드의 카이코라, 열대우림과 해안이 공존하는 브라질의 바이아 등이 인간과 자연의 균형적 관계에 주목하는 작가의 작업 배경이 되어왔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대부분의 작업을 텍스트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흔히 시각예술의 작가들이 아이디어를 이미지로 스케치하거나 간단한 단어로 메모하는 것과 달리 박기진은 현지에서 경험한 인상적인 일이나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수첩에 글로 쓰고 그 글을 다듬어가며 작업의 상상적 내러티브를 만들어간다. 일부 작품과 전시도록에 작가가 직접 쓴 텍스트가 함께 따라오는 것은 그런 이유이다. 작가가 텍스트를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이미 현실과 가상이 겹쳐지게 된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일과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책에서 읽은 것이 한 데 얽히고 그 과정에서 상상력이 더해져 언제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로 새롭게 재구성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는 소설가의 글쓰기 과정에 해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박기진의 작업은 시각예술로서 단지 이러한 상상적 내러티브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내러티브를 현실화한다. 현실화 과정에서는 주관적인 예술 표현뿐 아니라 때로는 객관적인 과학 실험의 수준에까지 달함으로써 복잡한 층위를 한 데 섞어놓아 다시금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상징적 함의를 전달하는 데 작가의 관심이 우선한다. 

 

박기진은 최근 남극 세종기지에 대형 구조물을 설치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김승영 작가와 공동으로 진행 중인 이 프로젝트는 세종기지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작가가 답사를 다녀온 바에 따르면 생태, 지질, 환경 등에 대한 연구목적으로 파견 가 있는 그곳 연구자들은 고립된 환경 속에서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독립공간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아 매우 예민해진 상태라고 한다. 이에 두 작가는 그들을 위해 기본적인 편의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모든 소음이 차단된 안온한 혼자만의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다. 외부에서 바라볼 때 그 형태는 알을 떠올리게 하는 타원형이 될 것이라 한다. 이 남극 프로젝트는 작가의 이전 작업에 비해 실제 효용을 우선적인 목적으로 하기에 과학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과학적 성과에 가려져 방치된 연구자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상징적인 함의가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사실상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예술과 과학은 상상력을 현실화한다는 커다란 공통분모를 가질 뿐 아니라 각자의 영역 안에서 실질적으로 상당부분 서로를 품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각자의 본분을 망각한 채 지나치게 서로를 탐할 때 어느 쪽으로도 의미있는 성과를 낼 수 없을지 모른다. 박기진은 적어도 예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다. 거기에 더해 그의 작업은 텍스트와 이미지, 현실과 가상, 노동과 개념, 과학과 예술 등 흔히 양립하기 어려운 대립항들을 자연스럽게 결합하고 각각의 층위를 교차시켜 변주해낸다는 큰 장점이 있다. 다만, 대부분이 상당한 제작비용을 필요로 하는 프로젝트성 작업이기에, 작업의 기회 자체에 제약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아직까지 작가가 전시에서 개별적으로 완결된 작품들을 선보인다는 개념이 강하고, 커미션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성 작업보다는 전시 위주로 작가의 성과를 가늠하는 우리나라의 풍토에서 작가가 실제 작업에 기울이는 노력보다 작업의 기회를 얻는데 더 큰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현실이 우려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작업의 일부로 여기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뚝심을 작가에게 기대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신혜영 |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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