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통(貫通)과 관류(貫流)

 

1.

'관통'이라는 말이 있다. '꿰뚫는다'는 의미다. 무언가를 물리적으로 뚫거나 심리적으로 꿰뚫는 것을 총칭한다. 박기진은 이런저런 것들을 관통한다. 이를테면 인공과 자연, 과학과 미신,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 문화와 문화, 사람과 사람, 생각과 생각 등이 그것이다. 흥미롭게도 박기진은 관(管), 혹은 통(桶)의 형식을 통해 이들의 필연성과 개연성, 상호관계성, 이질성 등을 관통한다. 시류(市流)에 크게 흔들리지 않으면서, 지난 5-6년 동안 형식의 진폭을 달리하며 흔들림 없이 이어오고 있다.

 

가장 최근에 제작한, 국립한글박물관 개관기념전에 소개된 바 있는, 단단하고 곧게 쭉 뻗은 강관(鋼管)을 사용한 ‘타임머신 통로’(2014)는 박기진의 이러한 작업지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시각적으로는 자연과 역사, 문화의 유구함과 찬연함을, 물리적으로는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수많은 질곡과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민초들의 현세극복의지를 도도한 흐름으로 힘 있게 길어 올렸다. 외관은 육중하고 직선적이며 단호하지만, 이러한 정신적 기운을  관내(管內) 영상으로 녹여내며 자연과 인공이라는 대비효과를 상호 극대화하는 등 생생하고 유연하게 증거하고 있다.

 

이렇듯 박기진의 작업은 여기와 저기, 이것과 저것, 옛것과 새것 등을 통시적(通時的)/공시적(共時的)으로 중개, 매개하며 의식의 지층과 고정된 가치의 단면을 시추한다. 의식의 진화과정을 소급해 들어가며 가려진 본질을 들춰내고 잊혀진 정신적 줄기를 가려내는 작업이다. 박기진은 재료적인 측면에서 무기질과 유기길, 내용적인 차원에서 유기적인 것과 무기적인 것, 즉 이질적인 재료와 생각들을 교차시키면서 역사와 현재, 인간와 자연, 인식(認識)과 의식(意識)의 드넓은 대평원을 관통한다. 시절과 시대, 세상과 세태, 현상의 표면과 이면을 냉엄하게 관통하며 현재, 혹은 현실이 가능할 수 있었던 본류를 삼투하는 박기진의 뚝심은 기성(旣成)가치에 대한 변용(變容)과 물질만능의 시대상을 해체하는 등 다소 파격적인 양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2.

박기진 작업의 전체적인 인상은 유기적인 시각적 특질이 강하지만 비교적 냉정하고 엄격하다. 특히, 외형적으로, 근작에 이를수록 단일형식 또는 직선적 요소가 강조되는 등 제법 단단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재료의 본래적 질감을 최대한 존중하고 원색의 주관적 색감을 부여하면서, 나아가 영상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풀어내면서 지난 대부분의 작업에서 접할 수 있었던 인간적인, 따뜻한 온기를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구조적인 안정감과 함께 과감한 생략, 최소의 물리적 부피와 질량감을 확보하면서 군더더기 없는 단일 매스로 특정 시공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들은 몇몇 조형요소로 약호, 단순화되어 있거나 비대칭적(asymmetry) 통일감과 함께 반복적인 모티프를 강조한다. 일견 복잡하지 않고 제법 단순명료하며 자연스럽게 대조되고 대비되는 재료와 매스, 질서가 두드러지는 형국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젊은 작가 박기진은 지난 작업에서 확산/환원적 조형형식을 적절하게 조율하는, 진폭이 큰 특유의 제작방식으로 이런저런 대립과 충돌 양상 사이의 불통의 기운을, 마치 혈(穴)을 찌르듯 집어내고 상기시켜 왔다. 대부분의 작업은 자연 속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이를테면 특정 사물이나 생명체를 닮은, 생활 속에서 익숙하게 접해온 형상이나 형식, 혹은 이와는 반대로,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나치게 단순한 형태소로 응축되면서 구현되어왔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몇몇 작업은 단순한 조형적 탐닉, 혹은 지나치게 환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 조형적 미감에의 심취라기보다는 자연과 환경, 나아가 우주의 원형질에 대한 관심과 이야기들을 관(管)과 통(桶)의 형식을 통해 통(通)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생겨나는 오해 아닌 오해로 이해된다.

 

3.

박기진은 어릴 적부터 자연에 관심이 많았다. 인간세상, 자연현상 너머의 무엇이 항상 궁금했다. 현실과 함께 우주를 생각했다. 박기진의 자연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여행으로 이어졌다. 여행을 통해 수많은 대자연의 소리와 이야기들을 접했으며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공감각적 해석력을 키워나갔다. 이러한 관심과 사고는 생태와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역시 많은 이야기를 스스로 자아내기 시작했다. 특히 미술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이러한 환경과 자연에 대한 생각과 비전이 툭툭 작업으로 배어났다. 극히 자연스런 일이었다. 예술과 과학으로 해명하지 못하는 무엇과 호기심이 맞아 떨어졌다. 박기진에게 있어 자연은 작업 대상으로서의 단순 자연이 아니라, 자연 이면의 어떤 것, 현상 너머의 무엇이 궁금했던 어린 시절 호기심 바로 그것이었다.

 

박기진의 작업은 과거를 단순 반추하는 단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무경계의 시대, 혹은 경계혼탁시대의 세상의 이면과 저편을 갈파하며 멀리 과거와 미래의 공통지점을 시추하듯 관통하고 있다. 최근 남극이라는 극지에서의 체험과 작업은 그의 작업지향이 본격적인 환경지향으로 이어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남극에서 박기진은 세상의 끝과 회생가능성을 동시에 경험했다. 세상의 모든 생명질과 그들이 '생(生)-활(活)'하는 시공간의 문제를 적극 중개하기 시작했다. 자연과 인간세상의 저편과 근저를 그리워하며, 때론 지난날을 소급하며, 때론 낯선 질문을 던지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매일처럼 만나는 인간탐욕의 끝, 혼자의 힘으로 도저히 풀 수 없는 한계상황을 기꺼이 정면으로 돌파하며 내일로 향하고 있다. 

 

우주와 환경에 대한 세심한 관심, 자연의 겉과 속을 이어주며 인간 제(諸)의식의 지층과 단층, 단면을 노출, 시추하는 박기진의 작업은 무언가를 이어주고 풀어주며 들려주는 이야기 구조체라 할 수 있다. 최근 그의 작업은 무기적 질감과 유기적 느낌을 극명하게 대비하여 강조하고 있다. 금속재료 등을 사용하며 조형적 해석에 주목했던 초기의 건조한 작업으로부터 자연에 대한 생태학적 관심과 해석을 강조하며 미래적 비전의 장으로 유연하게 이행하고 있음이다. 물리적인 흔적을 중시하며 무언가를 향해 맹목적으로 치닫는 작업이 아니라, 시(時)와 때를 관통하며 그곳에 관류하는 생각과 가치, 개연성, 층위, 묵은 것, 지난 것 등을 들여다보며 그것들의 현재적 양태를 노출, 노정하고 그것들의 미래적 가치, 존재이유를 묵상하는 유의미한 호흡을 이어나가고 있다.

 

4.

박기진의 작업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본인이 체험한 자연과 생태, 미래적 이슈를 바탕으로 이땅과 우주에 저장된 가치와 기운을 반추하고 육화(肉化)하려는 노력이자 의지다. 오늘도 두터운 세상 모든 지층을 온몸으로 관통하며 현상의 심연에 깊게 침투한다. 기본적인 가치,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을 고유성과 특질을 오롯이 삼투한다. 막힌 소통의 혈을 풀어주고 이어주며 저간의 상호 사정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자연과 인간의 틀 너머에 존재하는 그 무엇에 도달하려는 공시적/통시적 시각과 열린 태도가 돋보인다. 작가가 지닌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인식의 크기와 정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음이다. 그의 작업은 때론 지나치게 섬세하고, 때론 다소 헤비하고 투박하지만 작가가 가져야 할 지적태도와 기본 어법을 찬찬히 돌아보게 하는 사뭇 진지한 작업이다.

 

박천남(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Penetration and Flowing through

1.

‘Penetration,’ which means ‘the action or process of making a way through or into something’, is the term used for both the physical and psychological actions of penetrating. Park Kijin’s work represents a multitude of things being transpierced. For instance, the subject matters of his works are often paired concepts: artificiality and nature, science and superstition, past and present, present and future, culture and culture, people and people, and a thought and another thought. These are the concepts penetrated by his work. Interestingly, Park’s work concerns the inevitability, likelihood, interrelationship and heterogeneity of the paired concepts in the form of a pipe or a barrel. In this regard, his penetration does not follow a trend, but it has been unwavering in over the last 5-6 years while formally having a broad range.

In his most recent work, “Time Machine Passage (2014),” exhibited in the memorial exhibition of the opening of the National Hangeul Museum, the penetrative aspect of his work is represented by using his application of straight steel pipes. In this work, Park articulated the refulgence and eternity that we find in nature, history and culture, and in terms of its physical aspect, the grass roots embody the strong will of those who endure many hardships in their lives in the hope of making a better world. Even though the exterior of the work conveys massive and straight characteristics, such characteristics are dissolved into the projection inside the tube as it vividly and flexibly characterizes the maximization of the contrast between nature and artificiality.

In this way, Park’s work penetrates the layers in our consciousness and our fixed values while mediating the juxtaposition of “here and there,” “this and that,” “old and new” and “synchrony and diachrony.” This practice brings the evolutionary process of our consciousness to the forefront, and by doing so, our hidden nature and forgotten spiritual sense are revealed and found. When looking at the materialistic aspects of our world, Park interchanges minerals and organic matter and mixes organic matters with inorganic matters. Park illuminates an extensive plain of consciousness and awareness, human and nature, history and the present by crossing disparate materials and ideas. Park’s critiques on the modern era, the world and social conditions reveal rather unconventional aspects of the present, such as the transformation of the value and the deconstruction of the materialistic versatility.  

2.

Overall, Park’s work leaves a relatively cool and firm impression, although the organic visual qualities are strong.  Particularly, the exterior of his work has given it a firm quality, as his more recent works highlight single or linear elements to a greater or lesser degree. Nevertheless, he spares the texture of the material as much as possible and uses his subjective sense of its original colors. Furthermore, by effectively representing the projected image, he has kept the human warmth that was encountered often in his past work.          

Through structural stability, bold omission, and a minimum of physical volume and mass, his recent works create a single mass without any unnecessity in its structure. They highlight repetitive motifs, using simplified forms and asymmetrical unity with some formative elements.  At first glance, his works appear to be uncomplicated, simple, and clear, even though they display naturally contrasting materials, mass, and order. As a young artist, Park has successfully been constructing a unique production method with large amplitude that appropriately adjusts the diffusion/reduction molding forms from his past work. Most of his work has been reminiscent of something in nature, such as a familiar shape or form that we often encounter in our everyday lives, or, rather ironically, resembling a specific object or life condensed into an overly simple morpheme. For this reason, some of his works have been criticized as being simple formative indulgences and overly reductive. However, such criticism is not caused by an infatuation with simple formative esthetics, but should be understood instead as a misapprehension caused by his interest in the stories of nature, the environment, and the protoplasm of the universe, all portrayed through the form of pipe and barrel.

 

3.

Park has been interested in nature since he was a child. His curiosity has always been on the human world and what a world beyond natural phenomena would be like. The real world is one of his main curiosities. His interest in nature has naturally led to his interest in traveling. Through his travels, he heard a variety of sounds, learned stories about the grandeur of nature, and developed an understanding of his time and space.  This, again, has led to his concern for ecology and the environment. He shared stories with others and began to create many stories himself. During his study of art, his thoughts and visions of the environment and nature were naturally reflected in his practice. He was curious about something that could not be explained by art and science. For Park Kijin, nature is not only a subject matter for his work, but something deeper, representative of the curiosity that he has had since childhood.

            Park’s work does not merely ruminate on the past; rather, it penetrates the various aspects of the borderless era, as if piercing the point of contact between the past and the future. For instance, his recent travelling experience and work in the Antarctic has served as an opportunity to be immersed in full-scale environment-oriented work. There, he experienced both the end of the world and the possibility of regeneration. Soon, he began actively mediating on all the kinds of life in the world and the issues of time and space in which they "live" and “are alive.”  While missing the opposite side of nature and the foundation of the human world, and looking to the past and asking unfamiliar questions time to time, he was moving forward. He was breaking through the end of human greed that we experience in our everyday life and the critical situations that cannot be resolved by one person-to move toward tomorrow.

Park's work embodies his attention to the universe and the environment, drilling into and exposing the strata, faults, and phases of human consciousness that connect the inside and the outside of nature. In this sense, his work conveys a narrative structure that connects and releases stories.  One can find an example of this in his recent work, which emphasizes the contrast between inorganic texture and organic sense. Whereas his earlier metal works focused on formative interpretation, his recent works present his interest in flexibly shifting to the future vision phase.  These are not works that focus on physical traces and blindly move toward something. Rather they examine the thoughts, values, probabilities, stratum, old things, and past things that pass through the present moment. These works continue their meaningful contemplation while meditating on their futuristic values ​​and the reasons for their existence.

4.

Park's work is based on his experience with nature, ecology, and the future issues that the artist himself has come across. He puts forth his willingness to reflect on and embody the energy and value stored in the earth and in space. This attitude continues in today’s work, in which he penetrates all the strata in the world and everywhere in the body, infiltrating deeply into the abyss of phenomena. His work absorbs uniqueness and qualities that will remain unchanged over time and releases the clogged blood of clogged communication while examining the mutual circumstances behind this low point. There is a synchronic/diachronic vision presented, and an open attitude towards reaching something that exists beyond nature and the human framework. His work is sometimes very delicate, sometimes somewhat heavy, but it is a serious work that takes a look at the intellectual attitudes and basic phrases that any artist should have.

Cheon nam Park (The Chief Curator at Sungkok 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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