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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력의 핍진성(逼眞性) : 박기진의 <Discovery>

 

모든 예술작품은 의미작용 속에서 작동하는 기호인 동시에 육체적 노동의 산물인 물리적 실체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양자는 회전문의 양면처럼 상호배타적인 역학 속에서 작동한다. 다시 말해, 하나가 전면에 드러나면 다른 하나는 배후로 숨는 것이다. 의미작용의 순환을 일시 정지시키는 물질성의 집요함이 전면에 드러나거나, 아니면 물질의 자연적 속성을 괄호치는 기호의 그물망이 둘러쳐지거나. 박기진의 작품이 특이한 점은 이런 양자택일에서 비껴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기호의 작용을 물질의 존재감으로 억제하거나 기호의 추상능력에 의해 물질성을 정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이 어떻게 기호인 동시에 물질일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박기진의 작품은 과학적 상상력이 빚어낸 느슨한 내러티브에 기초해 있고 그것을 통해 기호의 일상적 기능이라고 할 만한 커뮤니케이션의 작동을 지원하지만, 그것은 작품의 물리적 현존성을 억압하지 않는다. 그가 차용하는 과학적 담론은 단지 개념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가장 감각적인 차원에서 말 그대로 ‘육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위압적이면서 정교한 솜씨로 구현된 작품의 핍진성은 무엇보다 물리적 수준에서 관객을 설득하는 힘을 갖는다. 하지만 이러한 핍진성이 외부 대상의 모방 혹은 재현 능력에서 오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작품이 의미작용 속에서 자기 장소를 갖기 때문이다. 바다, 호수 등 물과 관련된 자연물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이 직접 드러나지만 그것이 상투적인 재현의 모델로 환원되지 않는 것은 작품의 물리적 설득력이 창조적인 의미작용의 영역과 호응하며 기호의 순환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공간 화랑의 붉은색 벽돌벽을 배경으로 사람 키 높이를 넘는 육중한 금속 재질의 구조물이 놓여 있다.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원추형의 물체가 갖는 위압적인 존재감은 이 붉은 벽돌색의 공간을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지하 실험실이나 격납고처럼 보이게 만든다. ‘미술작품’처럼 보이지 않는 생소한 외관과 정교한 만듦새가 묘한 기시감과 호기심을 동시에 자아낸다. 잠수함에서 나오는 소나(sona) 음향과 비슷하게 규칙적으로 공간 속에 반향되는 소리가 이러한 분위기를 가중시킨다. 원추형의 몸통 위쪽에는 둥근 모양의 원형들이 겹쳐 있고 그 안에서 물이 펌프를 통해 보글거리며 순환하고 있다. 이 창문과 물은 잠수함의 장비를 연상시키지만, 여기 놓인 물체는 어떤 것의 모방물이 아니라 실제의 용도를 가진 사물 그 자체다. 관객은 이 물체가 ‘부표’라는 것을 옆 벽에 걸려 있는 제작 설명서를 통해 알 수 있다. ‘부표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될 수 있는 부표란 점이 중요하다. 그것이 관객에게 갖는 감각적 설득력의 중요한 근거이기 때문이다.매끈한 외관과 정교한 완성도 때문에 마치 완제품을 갖다 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작가의 수작업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작가는 사전에 자료들을 철저히 섭렵하고 실제 부표를 만드는 회사에 일일이 문의해가면서 이것을 제작했다. 금속 판을 일일이 용접하여 몸체를 완성시키고 둥근 창은 선박 제작에 사용되는 특수유리를 끼워서 만들었다. 옆 벽에 부표의 설계도와 제작방법, 제작번호까지 명기해 놓음으로써 핍진성을 더욱 높였다. 반향 소리를 첨가한 것이 실제 부표와의 유일한 차이이다. 

하지만 이러한 물리적 핍진성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이 물건이 단지 실제의 부표를 전시장에 옮겨다 놓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갤러리 공간에서 이 부표는 외부 공간의 부표와는  다른 의미작용 속에서 기능하는 창조적인 사물이 된다. 여기서 부표는 작가가 만들어낸 하나의 상상적 내러티브 속으로 들어가서 그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이 전시장에 드로잉과 텍스트로 설명해놓은 이 내러티브는 지질학적 호기심에 의해 추출된 하나의 일화(아프리카의 두 호수가 지각변동으로 인해 둘로 갈라졌고 원래 함께 살던 물고기들은 각각의 호수에서 화려한 색채와 무채색이라는 완전히 다른 외관으로 진화했다는)에서 시작된다. 이 일화가 작품에 개입하는 방식은 물리적 요소로서의 작품의 존재 방식과 유사하다. 즉 이 일화는 허구의 산물이 아니라 실제 자료에서 발췌한 것인 동시에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한 가공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호수의 지각변동과 물고기들의 색깔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지만 작가가 만든 부표를 통해 양쪽 호수의 물고기들이 물 위로 올라가 서로를 발견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이야기는 상상력이 낳은 허구적 내러티브이기도 하다. 여기서 발생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은 물질적 존재감을 삭제함으로써가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열린다.

 

부표 이외에 전시 <디스커버리>에 출품된 다른 작품들 역시 동일한 내러티브에 연결되어 있다. 이들은 부표 작품을 보완하면서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주제를 변주한다. 전시장 입구의 천장 높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또 하나의 커다란 금속 원통형이다. 위쪽에서 안을 들여다보면 물의 흐름이 영상으로 투사된다. 천정에서가 아니라 아래에서 올라오는 이 영상은 정지된 물의 사진이 전사된 투명한 또 다른 레이어 위에 겹쳐져 일렁이면서 감각적 아름다움과 육중한 효과를 동시에 선사한다. 영상의 비현실적 효과와 금속 원통의 물질적 효과가 맞물려 다른 공간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 작품과 부표가 놓인 공간을 연결하는 공간에 놓여 있는 또 다른 작품 역시 바다의 형상과 관련이 있다. 여섯 겹의 평판으로 이루어진 이 네모난 작품은 파도의 리듬을 표현하고 있는데, 판 사이의 간격과 파도의 크기를 조금씩 달리해서 섬세한 층을 만들었다. 이 두 작품은 부표의 내러티브에 담겨 있는 ‘커뮤니케이션’ 혹은 ‘통로’의 이미지를 또 다른 방식으로 변주한다. 즉 물의 흐름이 일종의 소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부표에 비해서 약간은 재현적 일루전의 뉘앙스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부표의 존재감이 전시장 전체를 감싸 안기 때문에

무리없이 전체적 효과에 동참한다.  

 

지질학적, 생태학적 상상력이 가미된 ‘유사과학적’ ‘유사공산품적’ 아이디어는 드물지 않지만 박기진의 작품은 이러한 상호 강화의 역학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개성적이다. 서두에서도 말했듯이, 물리적 설득력과 상징적 설득력이 서로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단지 솜씨좋은 조형물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작품의 물리적 속성은 내러티브 속에 놓임으로 인해서 더 넓은 장으로 확장되며 내러티브 속에서 더 강한 핍진성을 얻는다. 이 점에서 박기진의 작품은 기계장치를 만들어내는 작가가 흔히 보여주는 ‘오작동’에 대한 문명비판적 관심과는 다른 지점에 있다. 그의 작업의 관심사는 현실의 비틀기도 개인적 세계로 침잠하기도 아니며 오히려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외향적 힘이다. 그는 쓸모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쓸모있는 것을 만든다. 하지만 이 쓸모는 상징적 관점에서만 의미를 획득하는 예술적 쓸모이기도 한 것이다. 핍진성은 물질성 그 자체에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의미작용을 감각적으로 설득하고 경험적으로 공유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요컨대 상상력은 그 핍진성에 의해서 현실과 맞닿지만, 전시장 안에서 펼쳐지는 이 현실은 번역된 혹은 재현된 이차적 현실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인 것이다.

 

조선령(독립 큐레이터) Seon Ryeong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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