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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정거장 프로젝트


지하철 역사에 부는 새 바람

-2018 예술정거장 프로젝트의 의미-

윤 진 섭(미술평론가)

Ⅰ.

지하철 인천시청역 1호선 역사는 인천 시내에서 시민들의 왕래가 가장 빈번한 곳 중 하나이다.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하루에 약 1만여 명의 이용객들이 이곳을 거쳐 간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인천시청’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인천시 행정의 중심이 되는 곳이기 때문에 시민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장소이다. 따라서 이처럼 특수한 장소에서 공공미술(public art)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2018 예술정거장 프로젝트 “언더그라운드 온 더 그라운드(Underground on the Ground)”]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시민들이 낸 세금을 예술작품을 통해 시민들에게 되돌려주는 예술적 공익성을 내포하고 있다.

‘예술정거장’이라는, 보통명사 두 개가 합쳐져 하나의 신조어를 이룬 이 용어는 얼핏 생소해 보이지만, 거기에는 한국 공공미술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려는 중요한 의도가 담겨있다. 평범한 정거장에 예술의 옷을 입힘으로써 무미건조한 공공장소를 따뜻한 정서와 이야기가 있는 새로운 생명체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주최 측의 소박한 여망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천문화재단이 주최하고 인천의 예술기획 전문단체인 문화수리공이 주관한 이번 행사는 기존의 국내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는 선례가 없는 지하철 역사에 주목함으로써 공공미술의 지평을 넓혔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지하철 역사에서 이루어진 기존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들 대부분이 붙박이 벽화나 조형물에 국한돼 온 현실에 비쳐볼 때, 조각을 비롯하여 설치, 미디어 아트, 개념미술, 퍼포먼스 등등 광범위한 미술의 영역을 포괄하고 있는 이번 프로젝트는 장차 공공미술 분야에 불게 될 새로운 바람을 예고하는 듯 하다. 그것은 이 땅에서 이루어진 기존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들이 공원을 비롯하여 도심의 거리나 건물을 이용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공공미술에 대한 새로운 발상에 의한 새로운 접근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이 행사가 가령 비엔날레건 프로젝트건 국내의 대다수 조각공원들이 인위적으로 공간을 조성하여 작품을 영구적으로 설치해 온 관례에 반해, 기존의 시설과 공간을 이용한 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작품을 철수하는 보다 유연한 개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역사에 설치된 이번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출품된 작품들은 작년 12월 13일부터 올해 10월 3일까지 약 10개월 간 대중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번 프로젝트가 지닌 이러한 한시적 특성은 영구적으로 설치된 기존의 조각공원이나 공공미술 프로젝트 혹은 모뉴먼트 작품들이 같은 장소에 영구적으로 설치됨으로써 관람자들에게 시각적으로 식상한 느낌을 주는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야외에서 벗어나 실내로 들어온 이번 전시에는 비닐과 플라스틱을 주소재로 삼은 이병찬의 작품 <소비생태계>나 직물을 매개로 다수의 시민들이 참여한 언사이트(Unsite)의 공동작품 <한길 긴뜨기>에서 볼 수 있듯이 보다 유연하며 가변적인 작품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Ⅱ.

이번 행사를 지휘한 이탈 감독은 이 전시가 지닌 의미를 ‘세계화’, ‘문화혼종’, ‘글로칼’, ‘공진화(coevolution)’ 등등의 키워드로 설명한다. 그 기저에는 새로운 세계화의 시대를 맞이하여 국제미술계에서 이제까지 변방으로 취급돼 왔던 지역의 미술이 어떻게 하면 공진화를 거듭하여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느냐 하는 힘의 역학관계에 대한 고민이 깔려있다. “수직적 관계의 서열 구도가 아니라 수평적 차이들로 조직되어 얽혀 있는 모습”이 바람직한 세계상임을 전제한 그는 그 실천 전략으로써 ‘지역문화의 자생력과 대안적 전략’을 상정한다. 그가 주장하는 이러한 언설들은 일찍이 내가 한 글1)에서 주장한 “산을 깎아서 골짜기를 메우는” 전략과도 유사하다. 여기서 ‘산’은 서구를, 골짜기는 ‘제3세계’를 지칭하는 바, 비서구권의 문화종사자와 예술가들이 그러한 평탄작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때, 이제까지 힘의 비균등 상태에서 고착돼 온 대(對) 서구의 문화적 종속관계가 점진적으로 해소돼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바람직한 문화적 전망이란 한 낱 이론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뼈를 깎는 고민과 자성, 그리고 투철한 신념을 가지고 수행해 나가는 문화실천자들의 ‘몸의 기투(企投)’가 필수적이다. 그것은 어느 날의 자각에서 비롯되며 기존의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를 요구한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탈이 “내부적이고 미시적인 요소들 사이의 차이와 다름, 즉 질적 다양성”의 전개에 방점을 찍고, 그의 용어를 빌리면 ‘세방화(glocalization)’하려는 전략은 매우 시기적절해 보인다. 그 이유는 전자유목주의와 SNS로 대변되는 현재의 문화적 환경에서 문화평탄주의의 유포에 대한 구체적 전략이 새로운 힘을 얻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활판 인쇄와 같은 더디고 느린 아날로그 매체에 의존하던 과거와는 달리,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대변되는 SNS의 새로운 디지털 환경은 사이버 상에서 국가와 민족, 문명과 문화권 사이의 물리적 경계를 급속히 허무는 가운데 새로운 문화적 환경의 도래를 입증해 준다. 이러한 현상은 가령 건물 옥상에 세워진 과거 제니 홀쩌나 바바라 크루거의 거대한 전자식 공공미술 작품들(전광판)이 현재 스마트폰으로 옮겨온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마트폰과 같은 첨단 통신 매체의 발달은 이제 불특정 다수인 개개인을 메시지의 발신자와 수신자로 만든다. 손에 쥔 스마트폰의 화면에는 누군가가 발신한 메시지가 검정 혹은 빨강의 선명한 색상에 희고 굵은 고딕체로 나타난다. 이처럼 옥탑에서 손안으로 들어온 메시지들은 예술의 민주화를 대변해 주는 대표적인 지표이다.2)

이 시대의 문화기획은 이처럼 인류가 창조한 새로운 문화적 환경과 테크놀러지의 발달을 염두에 둘 때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 벌어졌던 이미지의 독재에서 오는 폐해를 막을 수 있다. 그 일은 무엇보다도 현대의 문화 전파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비롯된다. 오늘날 대중이 참여하는 스마트폰에 의한 전파는 예컨대 페이스북의 공유 행위에서 보듯이, 이제 인류가 국경이 없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시대에 진입했음을 알려주는 비근한 예이다3). 쌍방향 접촉(interactive contact)이 실시간으로 가능한 디지털 환경은 과거의 공공미술이 지닌 주입식 미적 교육이 아니라, 웹상에서 스마트폰으로 찍은 작품 사진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올리거나 댓글을 다는 행위, 그리고 그것들을 공유하는 행위를 통해 예술 향유의 민주화를 위한 초석을 깔았다. 앞에서 예로 든 바바라 크루거나 제니 홀쩌의 아날로그식 메시지는 이제 페이스북의 댓글에 의한 토론에서 텍스트의 진위를 검증받기에 이르렀다. 어느덧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공공미술은 대중의 참여에 의해 검증을 받는 단계로까지 진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Ⅲ.

1호선 인천시청역사의 구내는 크고 넓은 두 개의 공간을 잇는 중앙의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돼 있다. 이 두 개의 층에 강용면, 김구림, 김승영, 김용철, 김유석, 김원근, 김창겸, 박기진, 박종영, 배성미, 설총식, 성능경, 육근병, 윤진섭, 이강소, 이건용, 이민수, 이병찬, 이승택, 이재형, 이종구, 조권익, 최은동, 홍원석, 황문정, 펠렉스 곤잘레스 토레즈, 피에르 파브르, 러봇랩, 언사이트 등 국내외 27명의 작가와 2개 팀의 작품들이 고르게 포진해 있다.4) 개찰구를 빠져나오거나 이제 막 지하철역 구내로 들어선 승객들은 적재적소에 포진해 있는 작품들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예술이 일상공간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공공예술 작품이 지닌 진정한 묘미는 이처럼 일상적 환경 속으로 들어와 관객에게 말을 거는 데 있다. 그렇게 해서 관객과 상호작용을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관객의 삶의 질을 높이거나 나아가서는 삶을 바꾸는데 기여하게 된다. 작가들의 개성과 예술관이 투영된 독자적인 작품세계는 매우 다양하지만, 놀이와 일상, 디지털 인터랙티브, 접촉, 풍자와 현실고발, 실제와 환영, 팝적 상징, 관객참여, 키네틱 아트, 협업, 성적 소수자, 젠더, 환경과 생태 등의 주제로 집약되고 있다. 이러한 단어들은 이제까지 미술의 맥락에서 첨예한 주제로 떠오른 키워드들로써 현 단계 한국 현대미술의 풍경을 서술하는데 요긴하게 사용돼 온 것들이다. 관객들은 현장에 포진한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하는 가운데 앞에서 열거한 단어들이 주는 함의를 포착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다른 것을 연상하거나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그 어느 것이 됐든 중요한 것은 작품이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열려 있다고 하는 사실이며, 그것은 보다 폭 넓은 의미에서 교사가 없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미적 교육의 계기가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공공미술이 지닌 고유의 교육적 기능이자 효과라는 점에서 이번 행사의 보다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공공미술이 지닌 순기능적 측면으로써 “세계와 지역의 울타리를 넘어 평화와 공생을 위한 도약의 꿈”(이탈)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예비적 단계인 것이다.

<On the Ground under Ground, 2018 예술정거장 프로젝트 서문, 2018>

1) 윤진섭,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의 역사와 비평>, 미술사학연구회 논문집, 2017

2) 나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9년에 발표한 <현실 혹은 가상? 나의 페이스북 체험기>라는 논문에서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새로운 창조는 손끝에서 나온다(New creation comes out of the fingertips).” 라고 쓴 적이 있는데, 이런 현상은 이제 대세가 돼 가고 있다.

3) 이번 행사의 수석 큐레이터인 고경옥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본 프로젝트의 개념을 서술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본 행사의 브로슈어를 참고할 것.

4) 예외가 있다면 펠렉스 곤잘레스 토레즈인데, 청바지의 이미지를 확대한 그의 작품은 인천시청역을 비롯하여 예술회관역, 인천아트플레폼, 간석오거리역, 인천터미널역, 원인재역 등 6곳에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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