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우테크놀로지의 상상력을 경험하다
테크놀로지가 미술의 영역을 확장한 것만은 틀림없다. 물감과 염료기술의 발전으로 회화 기법이 다양해진 것만은 아니다. 디지털에 의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다른 형태의 미술품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하이테크놀로지는 상상 이상의 무언가를 관람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미술의 영역은 하이테크놀로지로만 채워지고 있는 것만도 아니다. 로우테크놀로지가 주는 감동 역시 크다. 2015년 2월 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로우테크놀로지:미래로 돌아가다’ 전(展)에서는 바로 그런 감동과 조우하게 된다. 예술과 기술, 과거와 미래, 오래됨과 새로움이 만들어내는 로우테크놀로지의 상상력을 경험한다고 할 수 있다.
기계적 정교함과 환영의 공간이 돋보여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은 박기진의 ‘발견’이다. 공장에서 볼 법한 기계가 보인다. 거대한 원형 전망대처럼 놓인 이 작품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 다시 둥근 통이 보이는데, 그 통 속에는 물의 영상이 있다. 말라위와 탕기타라는 아프리카의 두 개의 호수가 원래는 하나였는데, 지각변동으로 갈라졌다는 것에 작가는 착안해 두 호수의 물을 다시 결합해주는 시도를 작품을 통해 하고 있다.
박기진 작가의 발견 ⓒ 서울시립미술관
이예승의 ‘케이브 인트로 더 케이트: 더 와일드 루머(CAVE into the cave : A wild rumor)’는 플라톤의 동굴우상을 떠올리게 한다. 거대한 원형에 빛이 투영되는데, 그 안에 있는 오브제들이 그림자로 비춰진다. 관람 위치에 따라 그림자도 달라져 원형 속을 궁금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미메시스 덫에 걸린 인간을 경계하며 미디어 환경이 가속화하는 현대적 삶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있다.
‘언제나 피곤은 꿈과 함께’라는 양정욱의 작품은 기계의 정교함이 돋보인다. 구동부와 역학구조가 그대로 드러나는 키네틱 조각을 수공예적 노동을 통해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말을 거북이만 모른다.’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거북이와 닮지는 않았지만 정교하게 기계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 쳇바퀴 도는 우리 일상을 은유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양정욱 작가의 언제나 피곤은 꿈과 함께 ⓒ 서울시립미술관
‘마이셔츠 이즈 마이 쉘터(My shirt is my shelter)’는 보는 순간 웃음이 푹 터져 나온다. 이원우는 이 큰 도시에 자신이 쉴 곳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다. 버스 정류장 위를 덮은 4m 정도의 거대한 셔츠가 드리워졌는데, 작가는 이 셔츠로 덮은 이 공간이 자신의 쉼터라고 말하고 있다. 관람객이 그 안으로 들어가면 누군가의 티셔츠 속에 앉은 경험을 하게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신성환의 ‘시시각각’은 환영이자 상상력을 자극한다. 공간에 책장, 책상, 컴퓨터 모니터, 유리창 등이 있다. 그런데 모두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어 현실과 괴리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내 프로그램화된 빔프로젝트가 시시각각 다른 영상을 투여하면서 이 공간은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창밖으로 비도 오고 햇빛도 쏟아진다. 눈이 펑펑 내리기도 하는데, 환영의 공간에서 삶의 공간으로 변화를 시키고 있다.
경계에 대한 질문과 은유
‘이클리스(eclipse)’는 말 그대로 일식을 표현한 작품이다. 지름 2미터의 두 개의 검은색 원이 9미터의 레일 위를 천천히 움직이면서 서로 다가오고 만나고 또 다시 멀어져 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정성윤은 일식이 주는 과학적 현상보다 정서적 영향에 주목을 하고 이 작품을 만들었다. 과거에는 일식은 몰락과 불운의 상징이었다. 작가 역시 자연현상 앞에서 느꼈을 고대인들의 감정을 이 기계 장치를 통해 표현해내고 있다.
김태운의 ‘과자집’과 ‘다시 또 그 자리’는 하나의 쌍을 이루어 만든 두 개의 작품이다. 실제 고시원 살인 사건을 다룬 과자집. 시계장치와 기차 레일 등의 오브제를 통해 늘 변화하지만 반복되는 궤도를 갖는 모형 기차와 철로. 마치 무관심하고 항상 반복되는 궤도를 갖는 현대인의 일상과 닮았다.
이배경 작가의 메트로폴리스 메타포 ⓒ 서울시립미술관
‘메트로폴리스 메타포’는 로우테크놀로지 중심의 이 전시회에서 가장 하이테크놀로지를 이용한 작품이다. 송풍기와 초음파 센서가 장착된 에어포터 64개로 바람을 만들어 정육면체를 공중에 띄우는 키네틱 작품이기 때문이다.
주변 관람객에 의해 정육면체가 한쪽으로 기울기도 하고 높이가 낮아지기도 하지만 절대 그 공간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한쪽 바람이 강해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센서가 작동해 반대편 바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배경은 이 작품을 통해 후기산업사회에 불어오는 바람과 그 바람을 떠다니는 물체를 재현해내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관람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과도 조우하게 된다. 한국의 미디어 작가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육태진의 작품이 그 첫 번째이다. 끝없는 가로수 길을 걷는 남자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담긴 비디오 영상이 고가구와 한 세트가 되어 앞뒤로 움직이는데, 마치 보행자의 움직임과 닮았다. 뒷모습만 보이는 이 남자의 모습을 통해 관람객에게 묻고 있다. 이 사람은 자아를 배회하는 방랑자인지, 아니면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는 구도자인지, 그것도 아니면 왜 이렇게 걷고 있는지를.
문주의 ‘모더니즘 강시’는 남녀의 모습이 담긴 미디어아트이다. 매체를 통해 재현된 우리 몸과 우리가 알고 있는 몸은 어떻게 다른지. 그 인식의 차이와 한계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홍성도의 ‘시각오염’은 돌 주변에 네온사인이 결합한 설치미술이다. 이 작품 결합되면 이상할 것 같은 전혀 다른 두 개의 소재를 가지고 테크놀로지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정지현의 ‘테크 리허설과, 스킨 패스터(skin paster)’도 관람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자신의 예전 작품이 전시 전 대기상태로 골조가 드러나는 공간을 뒤편에 높고 3D 아바타 스킨을 결합한 다음 BJ의 인터넷 방송을 틀어놓고 있다. 이는 기술이 혼재된 경계에서 무엇이 로우테크인지, 하이테이크인지를 물어보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병찬의 작품은 일회용 비닐봉지가 만들어낸 괴물을 그리고 있다. 경제발전과 산업화가 양산해내는 온갖 종류의 비닐이 형형색색을 가진 3m 정도의 괴물을 탄생시켰다. 언뜻 아름답기도 하다. 하지만 이내 소재가 우리가 사용하는 일회용 비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발전이 주는 풍요로움이 긍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님을 깨닫게 된다.
김연희 객원기자다른 기사 보기iini0318@hanm전시회ail.net
저작권자 2015.01.06 ⓒ ScienceTimes
[출처] 로우테크놀로지의 상상력을 경험하다서울시립미술관서 열려|작성자 KOF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