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각의 위치 』
- 쿤스트 독
- 2013년 4월 26일
- 4분 분량
현대사회는 다원성을 대표적인 특질로 내세운다. 즉 수직과 수평의 이원적 체계를 벗어난 접점들이 세계의 현상에 대해 유동적인 좌표를 제공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견해는 미학적인 관점의 점검과 변화를 예고하기도 한다. 동시대 미술의 최전선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가역적 현상들은 더 이상 전복과 탈주의 범주에서 규명할 수 없는 층위를 탐색한다. 무의미한 것들이 기존의 전제와 억압을 벗고 가치의 중심이 되거나 순차적이던 미적 체계를 뒤흔들며 감춰져 있던 새로운 관계의 영역을 찾아내는 일 등이 그 층위의 일부분이다. 감각의 위치는 한국의 미술에서 이런 관점의 가시적 척도를 제공하는 작가들의 작품들로 구성된 일련의 기획이며 시리즈 1로부터 시리즈 3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 박기진, Discovery, Mixed Materials Media, Variable Size, 2011
▲ 박기진, Discovery, Mixed Materials Media, Variable Size, 2011
박기진 작가노트 |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물음의 연속이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찾은 ‘존재에 대한 물음’은 살아가는 자로서 필연적인 물음일 것 같다. 즉 현상을 파악하기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그것을 형성하는 존재의 위치를 파악하는 일이다. 존재는 보이는 것과 바라보는 것 사이의 관계에서 처음 발견하게 된다. 상대적 개념의 두 존재는 각각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우주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가까워질수록 더욱 닮아 간다. 존재의 안과 밖에 있는 공간은 존재의 자리함에서 비로소 생겨나며, 따라서 공간에 대한 인식은 당연한 과정이다. 빛이 표피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호함은 투명한 존재를 공간에 녹아들게 하고 그로 인해 겹쳐진 안과 밖의 공간은 존재를 드러내고 무한히 확장시키는데 이는 우리를 심해의 푸른빛 속 존재에게 인도(引導)한다. 어린 시절을 바다로 둘러싸인 곳에서 자랐고 이후 바다는 그리움과 거대한 마음속 공허의 대상으로 자리 잡아 왔다. 그것은 깊은 물속으로 빠져드는 것과 같은 느낌이며, 하나의 공간이 되었다. 바다에 대한 동경은 잠수 경험을 통해 체화 되었고, 수면 밑의 부피 속에서 느낀 존재들은 바닷물의 밀도와 압력으로 더욱 예민하게 다가왔다. 여행을 통해서 체험한 느낌을 토대로 가정한 시나리오 속의 이상적 공간을 전시장으로 옮기기 위해 심해 생물의 이미지인 유기적 형태들을 매달아 설치하고, 서로 다른 존재 자체를 교차하여 투명한 합치의 공간을 구성해 전시 공간을 심해 속으로 침수시키고 감상자를 공간 속으로 인도해서 마치 유영하는 듯 존재와 조우하게 하려는 시도였다. 초월적 공간에 매달린 형태의 구상에 있어서는 유기적인 자연의 존재를, 구조의 제작에 있어서는 인간의 존재를 이입하고 두 존재를 투명함으로 감싸서 존재의 실체에 접근하고 있다. 존재는 가시적으로 드러난 투명함으로 내밀한 무한을 얻게 되는데 이로써 초월적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침내 무한히 커진 존재와 초월적 공간의 실체가 우리에게 현상을 바로 볼 수 있는 혜안(慧眼)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윤성지, 20120, Inkjet Print, Wood Frame, 100x70cm, 2012
▲ 윤성지, Wet wood and others, Mixed Media, Installation Variable, 2012
윤성지 작가노트 | 날카로운 커터 칼을 준비한다. 혹시나 해서 재단용 가위를 사 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칼날 아래로 인조가죽과 함께 솜 뭉치들이 서걱인다. 헝클어진 내장 같은 솜 뭉치 아래로 각목, 철 스프링, 비닐 조각들. 허술한 것들은, 내 허술한 도구들로도 모조리 잘려 나간다. 잠시 허망한 기분이 든다. 신성목재소에 들른다. 16개가 든 각목 한 묶음. 자동PP밴드 결속 기로 묶여진 나일론 끈은 이음새 없이 말끔해서 그냥 두기로 한다. 2미터 10센티로 잘라 싣는다. 의미 없는 글자 들은 내가 좋아하는 글자들이기도 하고 (록, 숲, 기 같은) 옆 방 동료들이 한 글자씩 골라 주기도 한다. 그리고 스폰지로 물감을 세심하게 찍어, 글자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다시 덧칠을 한다. 몇 글자는 남겨 둔다. 그리고는 산책을 간다. 나는 무엇을 하려 하는가?를 다시 생각해 본다. 내가 다니는 산책길은 호젓한 숲길이 아니다. 늘 다니는 마을 앞 길, 2차선 도로를 옆으로 하고 계속 걷다가 다리가 아파 오면 다시 돌아 온다. 그 길에는 허름한 간판들과 무심히 스치는 트럭들과 뒹구는 비닐봉지와 오래 된 쓰레기들이 있다. 녹초가 되어 돌아 와도 나는 해답을 얻지 못한다. 사실 해답은 내가 걷는 이 길, 이 시간의 밖에 있어서 내가 닿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그저 다리가 아프도록 걸을 뿐이다. 제목은 ‘젖은 나무와 나머지 것 들’로 정하기로 한다. 각목 묶음은 젖어 있지 않다. 그러나 어떤 나무도 항상 젖어 있을 수는 없으므로, 그리고 각목은 아주 말라 있지도 않으므로, 나는 괘념치 않기로 한다.
▲ 이종건, Bridge of Paradise, Engraving on Antique Hardwood Flooring, 243x304.8x8cm, 2010
▲ 이종건, Bridge of Paradise, Engraving on Antique Hardwood Flooring, 243x304.8x8cm, 2010
이종건 작가노트 | 본래의 장소나 문맥으로부터 이전된 역사적, 문화적 건축물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한 나의 작업은 미국 동북부 지역에 거주한 오 년의 시간을 거치면서면서 이 같은 건축물들이 내포하는 이질감에 대한 재현의 형태를 띄게 되었다. 뉴잉글랜드 콜로니올 양식의 주거 공간에서부터 공공 장소의 기념비에 이르는 다양한 건축물들이 미국이 아닌 외부의 문화에 그 근간을 두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 후 건축물과 장소 사이의 역사적, 문화적 연관성에 더욱 주목하게 된 것이다. 본래적 의미를 결여한 건축물의 이질적 존재는 낯선 공간에서 경험한 문화적 차이를 해소하기 위한 나의 끊임없는 노력과 비례하여 더욱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외부인으로서 견지할 수 밖에 없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말미암아 낯선 장소로 이전된 건축물들의 미묘한 이질감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나는 본래의 장소로부터 이전된 건축물들이 그것이 갖는 문화적 의미를 상실함을 알게 되었다. 장소에 따른 문화적 의미 이동의 경험을 담고자, 특정 문화를 상징하는 역사적 건축물을 조각과 설치 작품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하였다. 특히 전체가 아닌 문화적 상징성이 부각된 일부분만을 재현함으로써 본래의 공간을 연상하도록 구성하였다. 뉴잉글랜드 콜로니올 양식의 주거 공간을 변형하여 재현하거나 뉴욕에서 거주했던 집의 벽면을 롤러로 제작하여 벽에 인쇄하는 행위, 그리스 식 기둥의 일부를 제작한 후 표면에 초등학교 때 일기를 새겨 넣은 작업 등은 모두 특정 문화와 장소 사이의 상관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또한, 뉴잉글랜드 지역의 버려진 콜로니올 양식의 집에서 수거한 앤틱 마룻바닥에 유토피아를 상징하는 페르시안 정원 카펫의 문양을 새겨 넣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작업의 과정에서 기둥, 계단, 마룻바닥 등은 건축적 요소로서의 기능과 용도를 상실하게 되며, 그 결과로 각각의 작업들은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분리된 공간에 대한 기억으로 남게 된다.
▲ 홍기원, Ich mochte bitte eine icekaffe, Wood, Motor, 50(W)x78(H)x130(L)cm, 2012
▲ 홍기원, Untitled, Pen on Paper, 29x21cm, 2012
▲ 홍기원, Untitled, Pen on Paper, 29x21cm, 2012
홍기원 작가노트 | 나는 2009년부터, 키네틱(Kinetic) 요소와 컨템포러리 문화의 관계라는 큰 틀에서 신체, 오브제의 움직임 및 암시, 장소와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특히, 목적성이 결여된 움직임의 멀티 컬러 설치 조각은 기계적이면서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공간적 개념과 키네틱 오브제의 관계를 시도하는 것으로, 디즈니랜드의 놀이기구, 로봇 등을 하나의 오픈된 갤러리 안의 키네틱 조각으로 가정하였다. 이에 대한 연장선으로 크게는 도시와 나라, 주어진 환경을(one’s own surrounding) 또 하나의 오픈된 갤러리로 가정하며, 여기서 발생하는 움직임을, 관객의 이동과 연관시켜 실험하고 있다. 더 나아가, 움직임의 특성 중 퍼포먼스적, 연극적 요소, 시간성 및 장소의 관계에 대한 탐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작업 과정에서 사용되는, 파운드 오브제(founded object), 일상용품(daily object) 및 다른 작업에서의 이미 사용된 오브제 등은 '계산된 즉흥적인 접근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다시 칠해지고, 재배열되는 과정을 걸쳐 하나의 작업으로 선언된다. 이렇게 오브제를 넣고 제거하는 방식으로 작가의 언어는 팽창하며, 무엇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다양한 접근 및 해석이 가능해지고, 비 권위적이고(non-authoritarian) 그리고 플레이플(Playful) 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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